스타트업 ‘소울부스터’의 박수영(31) 대표는 회계사로 일하던 시절 창업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밤마다 코딩을 공부했다. 박 대표가 결국 회계 법인을 관두고 시작한 사업은 ‘맞춤형 속옷’, 정확하게는 맞춤형 브래지어를 제작·판매하는 일이다. 그가 주경야독으로 공부한 코딩과 맞춤형 속옷은 무슨 상관 관계일까.

사용자 체형·개성 반영한 브래지어
코치가 1대1로 도와주는 다이어트
빅데이터 활용한 수학교육 서비스
미국선 이미 트렌드로 자리잡아

소울부스터는 온라인으로 고객의 체형·사이즈를 분석해 최적화된 브래지어를 제작한다. 박 대표는 개발자들과 만든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사용자가 입력한 정보와 취향, 한국인 데이터베이스 등을 총체적으로 분석해 브래지어를 만든다. 기성 브래지어를 착용했을 때 어느 부분이 쭈글쭈글했는지와 같은 정보도 입력한다. 정장을 주로 입는 여성이 몸매가 좀 더 좋아보이고 싶다면 뾰족한 형태의 컵을 권해준다.

박 대표는 “맞는 사이즈의 브래지어를 샀는데도 불편하고 가슴이 답답했던 경험에서 시작한 사업 아이템”이라며 “아직까지 시범 운영중이지만 다음달부터 쇼핑몰을 열고 본격적인 마케팅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격도 브래지어 한 개당 3만~4만원으로 합리적인 수준이다.

1대1 맞춤형 제품과 서비스로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스타트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과거 양장점에서 재단사가 직접 재단해서 제작한 양복을 ‘테일러드’(tailored) 수트라고 불렀던 것처럼, 고객에게 맞춤형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테일러드’ 스타트업이 각광받는 것이다. 스타트업이 후발주자로 뛰어들려고 하는 시장 대부분은 이미 레드오션이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1대1 전략’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소비자 맞춤 전략은 예전부터 존재한 마케팅 기법이다. 그러나 최근 등장한 ‘테일러드’ 스타트업들은 대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하이테크 기업이라는 특징이 있다. 소규모로 시작한 스타트업들이 다량 주문, 다량 생산에 목매지 않으면서도 제품의 품질 제고 및 고객 만족도 향상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은 업체 입장에서도 장점이다. 빅데이터 기술의 발달로 대규모 인력과 투자를 하지 않고도 알고리즘 기술만 갖고 있으면 정교한 분석이 가능해진 것도 이 분야 스타트업들이 늘어난 이유다. 소울부스터의 직원수는 경력 18년차 개발자 1명을 포함해 총 4명에 불과하다.

빅데이터 및 AI 기술을 보유한 테크 스타트업 ‘마이셀럽스’는 맞춤형 검색엔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용자의 취향과 감정을 토대로 맞춤형 영화·식당·연예인 등을 검색해준다. 구체적인 키워드가 생각이 안나도 괜찮다. ‘혼술하기 좋은 달콤한 와인’이라고 검색해보니 188가지의 제안 결과가 나왔다. 각 와인 별로 ‘감미로운’, ‘향긋한’, ‘매혹적인’과 같은 태그가 붙어있다. 일반적인 검색 엔진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내용이다.

‘맞춤형 공부’도 가능해졌다. 천재교육은 스타트업 클래스큐브와 함께 지난 9일 ‘맞춤형 수학교육’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이 서비스는 빅데이터 기술을 토대로 학생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한다. 만약 인수분해가 약하다는 진단이 나왔다면 기본기를 좀 더 쌓기 위해서 근의 공식과 2차방정식 문제가 더 많이 나오는 식이다.

어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좀 더 편리하게 건강을 챙길 수도 있다. 다이어트 스타트업 ‘다노’는 1대1로 다이어트 코칭을 도와주는 ‘마이다노’ 앱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다이어트 코치가 원격으로 식생활과 운동을 돕는다. 다이어트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초기 4주간의 음식, 생활 습관을 바로 잡는 게 관건이기 때문이다. 먹는 음식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고 운동 기록도 올려야 한다.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닌데다 월 이용료가 9만9000원이지만 출시 2년 만에 누적 사용자 1만명을 돌파했다.

‘테일러드’ 스타트업은 미국에서는 이미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나만의 노래를 만들어주는 스타트업도 있다. 스타트업 ‘송핀치’는 발렌타인 데이나 프로포즈에 맞춘 ‘나만의 고백 노래’를 제작해준다. 노래 한 곡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일주일, 비용은 200달러(약 23만원)에서 시작한다. 주문자의 노래 취향은 1순위로 반영해준다.

DA 300


미국 ‘테일러드’ 스타트업 업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분야는 패션이다. ‘테일러드’ 스타트업의 사업성을 눈여겨본 세계 최대 IT 기업 구글도 지난 7일 패션 브랜드 H&M과 손잡고 ‘데이터 드레스’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데이터 드레스’란 스마트폰을 통해 파악한 일주일 간의 고객의 동선·날씨·행동 성향을 옷 디자인에 최대한 반영한 제품이다.

핸드백 브랜드 ‘몬 퍼스’는 3D 그래픽으로 구현된 자사 홈페이지에서 고객의 아이디어를 1대1로 반영한 맞춤형 핸드백을 제작한다. 따끈따끈하게 나온 나만의 ‘한정판’ 가방은 뉴욕 블루밍데일 백화점에 입점한 오프라인 매장에서 들어볼 수 있다. 온라인 쇼핑몰 ‘스티치 픽스’는 넷플릭스에서 데이터 과학자로 일하던 에릭 콜손이 만들었다. 고객의 취향과 예산, 구매 패턴에 최적화된 패션 아이템 5가지를 배송해준다. 고객은 이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아이템만 꺼내고 나머지는 그대로 반품하면 된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J report] 뭐가 필요하시죠? 테일러드 스타트업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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