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그만두지 않는 것이 진정 힘든 일이다 | 기본 카테고리2015-01-28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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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하드씽

벤 호로위츠 저/안진환 역
36.5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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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투자가 벤 호로위츠의 창업에 대한 한 수

비즈니스에서 '난제'란 크고 대담한 목표를 세우는 게 아니다. 그런 목표가 실패로 돌아갈 때 사람들을 해고하는 일이다. 훌륭한 인재를 영입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권리 의식을 키우며 지나친 요구를 늘어놓는 것에 대처하는 일이다. 조직도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렇게 구성된 조직 내에서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게 만드는 일이다. 큰 꿈을 갖자는 게 아니라, 그 꿈이 악몽이 되었을 때 식은 땀을 흘릴며 잠에서 깨어나 허둥대며 답을 찾는 일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스타트업의 구루 벤 호로위츠로부터 경험담을 듣다

 

이 책의 저자 벤 호로위츠는 실리콘밸리의 큰손, 수백만의 열혈 팬을 거느린 파워블로거, 테크놀로지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노련한 사업가로 통한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포춘>, <이코노미스트>,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 등에 수시로 소개되며 실리콘밸리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벤처 투자자이다.

 

그는 탄탄한 스토리가 있는 회사라면 사업 계획을 듣기도 전에 투자를 결심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지금까지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등 150개 이상의 쟁쟁한 신생기업에 투자해 왔다. 격동의 실리콘밸리에 몸담으며 다양한 테크놀로지 기업의 엔지니어, 관리자 등으로 일해 온 그는 1999년 라우드클라우드를 설립하고, 2002년 이를 옵스웨어라는 소프트웨어 업체로 전환한 뒤 2007년 휴렛팩커드에 16억 달러에 매각했다. 그리고 2009년 테크놀로지 업계의 슈퍼스타 마크 안드레센과 함께 벤처 캐피털 회사 안드레센 호로위츠를 설립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노련한 사업가이자 '스타트업의 구루'로 통하는 그는 이 책에서 지난 20여 년간 자신이 몸소 체험한 위기와 시련에 관한 생생한 경험담을 전한다. 여러 테크놀로지 기업의 엔지니어, 관리자, CEO 등으로 활약하며 무수히 많은 좌절과 어려움을 겪었음을 밝히고 있다.

 

경쟁사의 '공짜 판매' 공세 때문에 한창 잘나가던 회사가 도산 위기에 처해 회사 주가가 반 토막이 나고, 911 테러의 여파로 회사에서 가장 큰 계약을 날릴 위기에 처하고, 회사의 최대 고객이 졸지에 파산해 버리는 등의 역경을 거치면서 6600만달러로 시작한 회사를 8년 만에 16억달러의 가치로 성장시켰다. 저자의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우리는 경영의 난제難題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대학 재학 시절 실리콘그래픽스의 엔지니어로 일했던 경력이 인연이 되어 대학원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후 이 회사에 정식으로 입사했다. 그런데, 이 회사에 근무하던 딸의 얘기를 듣고 그녀의 아버지가 집요하게 스카우트 설득을 하는 통에 결국 신생기업 넷랩스로 이직을 했다.

 

당시 넷랩스의 경영진은 벤처 캐피털리스트가 영입한 '전문 경영 팀'이었다. 그들은 제품이나 기술에 대해선 거의 문외한이었다. 더구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같은 경영자들이라 회사 운영 방향을 수시로 바꾸면서 혼란만 가중시켰다. 저자는 이때 설립자가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처음으로 깨달았다. 또 자폐증을 앓는 딸을 보살펴야 하는 부담 때문에 회사 근무에 집중할 수 없었다.

 

로터스 디벨로프먼트로 직장을 옮겨 그의 가정은 안정화되어 갔다. 어느 날, 회사 동료가 인터넷 웹브라우저를 보여주었다. 이 제품에 감탄한 그는 인터넷이 바로 미래의 세상임을 직감하고 신문기사에 소개된 넷스케이프에 입사지원을 했다. 이 회사는 실리콘글래픽스의 전 창업자 짐 클라크와 웹브러우저 개발자 마크 안드레센이 공동으로 설립한 회사였다.

 

마크 안드레센을 만나다

 

넷스케이프에 근무하는 친구를 통해 면접 주선을 요청했다. 최고기술책임자CTO인마크 안드레센과 면접 일정이 잡혔다. 22살의 청년 마크는 그에게 이력, 경력, 근무 습관 등에 대해선 일절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대신 이메일과 협업 소프트웨어의 역사, 미래의 전망 등에 대해서 현란한 질문을 쏟아냈다. 이에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스스로 전문가라고 나름 자부하고 있었는데, 마크의 해박한 지식에 그는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과학 기술의 역사는 물론이고 기술에 대한 통찰력 또한 매우 탁월했기 때문이다. 보람 있는 면접이었다. 결국 그는 일주일 후 넷스케이프에 일자리를 얻었다. 얼마나 감격했는지 온몸에 전율이 전해왔다.

 

넷스케이프의 제품은 기업용으로 일반 웹서버와 보안 웹서버가 있었는데, 그는 이 제품 라인을 책임지게 되었다. 당시 그가 합류함으로써 엔지니어는 둘로 늘어났다. 이후 1995년 8월 기업공개로 상장될 무렵 웹서버 팀의 엔지니어는 9명으로 늘어났다. 공모가 주당 14달러인 회사의 주가는 상장 첫날 75달러까지 치솟다가 마감은 58달러였다. 당일 회사의 시장가치는 무려 30억 달러를 상회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세상을 뒤흔든 사건'이라고 대서특필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창업한 지 10여 년 만에 기업공개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넷스케이프는 사업을 시작한 지 불과 16개월밖에 안 되는 회사였다. 넷스케이프의 상장을 전후로 사람들은 '신경제'와 '후경제'로 구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경제가 승리의 나팔을 불며 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그러나 승리감에 도취되는 것도 잠시, 곧 심각한 위기가 닥쳐왔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95에 자사의 브라우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끼워 넣어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는 분명 넷스케이프에 막대한 타격이었다. 수익의 대부분이 브라우저 판매에서 발생하고 있었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체제 시장의 90퍼센트 이상을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깊은 우려를 표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우리는 "웹서버에서 돈을 벌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며 일단 그들을 안심시키기로 했다.


두 달 뒤, 우리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곧 출시될 웹서버인 IIS의 초기 견본품을 입수했다. 우리는 IIS를 이모저모 뜯어보고는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제품에 있는 기능이란 기능은 전부 탑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 회사의 고급 제품에만 들어가는 보안 기능까지 갖춰져 있었고, 속도도 우리 것보다 5배나 빨랐다.


한마디로 낭패였다. 이제 5개월 뒤면 IIS가 출시되는데, 그 안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회사가 결딴날 판국이었다. '구경제'에서는 하나의 제품이 시장에 나타나서 사라지기까지 통상 18개월이 걸렸다. 5개월은 그에 비하면 굉장히 짧았고, 심지어 '신경제'에서조차 예외적으로 짧은 시간이었다.

 

이후 스위트스팟의 대성공에도 불구하고 넷스케이프는 결국 더 버티지 못하고 1998년 아메리카온라인에 매각되고 말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승리로 끝났다. 이 사태로 마이크로소프트도 피해가 컸다. 개발자들이 윈도 기반 인터페이스에서 벗어나 인터넷으로 갈아 탄 것이다. 마크는 CTO가 되고, 저자는 전자 상거래 플랫폼을 운영하는 일이 배정되었다.

 

 

라우드클라우드를 설립하다

 

아메리카온라인의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AOL 협력 회사와 연결을 시도하면 번번이 협력 회사의 사이트가 다운돼 버렸다. 협력사의 웹사이트가 트래픽 과부하를 감당하지 못하서 발생하는 일이었다. 이런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줄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생겼다. 이는 결국 '클라우드'라는 개념에 도달했다.

 

이인식, 렘브란트 벤처 파트너스 대표 

 

1999년, 티모시 호웨스 박사, 이인식, 마크와 저자 등 4명의 기술자들은 라우드클라우드를 설립했다. 벤치마크 캐피탈이 1,500만 달러를, 마크가 600만 달러를 투자해서 출범했다. 이사회의 회장직은 마크가, 호웨스 박사가 CTO, 저자는 CEO를 맡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한국인 이인식에 대해 잠간 알아보자.   

 

현재 렘브란트 벤처 파트너스 대표로 실리콘밸리 내 가장 성공적인 한국계 벤처캐피털리스트로 꼽히는 이인식은 현재 UC버클리대에서 스타트업 육성에도 힘쓰고 있다. 1997년 키바 소프트웨어를 넷스케이프에 1,800억원에, 2007년 옵스웨어를 HP에 1조8000억원에 매각해 크게 주목받았던 인물이다.

 

회사는 신속하게 클라우드 인프라를 구축하고 빠른 속도로 고객들과 계약을 체결해 나갔다. 설립 7개월이 채 되기도 전에 계약고가 1천만 달러 정도였다. 경쟁사보다 더 빨리 움직일 필요가 있었기에 최고의 인재 영입에 나서 실리콘밸리에서 똑똑하다는 사람들을 매달 30명씩 채용했다. 공격적인 인재사냥으로 출범 6개월 만에 직원 200명을 거느리게 되었다. 500만 달러를 들여 회사 사무실도 1,400제곱미터의 창고 건물로 이전했다.

 

다음 분기 2,700만 달러의 새로운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역사상 가장 거대한 사업체로 성장하는 기분이 들었다. 불행하게도 여기까지였다. 갑자기 '닷컴 붕괴' 현상이 시작되었다. 2000년 3월 10일 5,048.62를 기록했던 나스닥 지수가 1,200선 아래까지 하락하는 대폭락이 이어졌다.

 

회사의 보유 자금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면서 투자자들은 공포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투자자로부터 추가적인 자금조달이 어려워지자 회사는 기업공개를 준비했다. 문제는 회계 방식이었다. 회사는 통상 2년짜리 계약을 맺고 이를 월 매출로 인정했지만 당시로선 매우 특이했다. 빠른 속도로 계약고를 늘리고 있었기에 예상 수익은 새로운 계약액에 비해 매우 뒤쳐졌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등록서류에 다음해 년간 예상 수익이 7,500만 달러로 명시됐다. 그런데, 직전 6개월간의 수익은 1억 9천 4백만 달러였다. 이런 계산법에 의하면 회사는 기록적인 손실로 보였던 것이다.

 

언론이 떠들기 시작했다. 애널리스트의 말을 인용하며 '주차장에서 지폐로 모닥불이나 피우고 놀았기 때문에 직원 1인당 1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지옥의 기업공개' 등 소름 끼치는 비난을 늘어놓았다. 회사는 주당 10달러에 자금을 공모하기로 했지만 과연 이 가격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그럼에도 600명으로 늘어난 직원들은 이를 모른 채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공개를 앞두고 진행된 로드쇼도 참담햇다. 연일 주식 시장은 추락을 거듭했고, 모든 비난의 화살은 테크놀로지 기업들에게로 향했다. 결국 공모가는 6달러 선으로 낮춰지게 됐다. 1억 6,250만 달러가 조성됐지만 축하도, 파티도 없었다. 기업공개 후에도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예상 수익 가이던스를 7,500만 달러에서 5,500만 달러로 대폭 낮추는 통에 묵사발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는 인원 감축의 필요성을 의미하는 메세지였고, 골드만 삭스와 모건 스탠리는 관심종목에서 아예 빼버리고 말았다. 주가는 6달러에서 2달러로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이렇게 엄청난 부정적 여파 속에서도 우리는 굳건히 앞으로 나아갔다. 2001년 3분기에는 꽤나 견실한 실적을 쌓아 올렸다. 그러던 9월 11일, 테러리스트들이 제트 여객기를 4대나 납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중 2대는 세계무역센터로 돌진했고, 1대는 미 국방부 청사에 떨어졌다. 이 사건 하나로 전 세계가 순식간에 혼돈에 휩싸였다.


그 분기에 회사의 가장 큰 거래는 영국 정부와의 계약이었다. 규모가 해당 분기 총 계약고의 3분의 1에 달했다. 911사태가 발생한 지 얼마 뒤, 우호적인 방향으로 진행되던 거래의 담당자로부터 불행한 소식이 들려 왔다. 토니 블레어 수상이 이 계약에 쓸 예산을 전쟁자금으로 전환해 버렸다는 것이다. 다행히 회사의 세일즈 책임자가 토니 블레어의 비서 중 한 명을 설득시켜 계약에 성공함으로써 가까스로 분기 목표를 달성했다. 한마디로 기적이었다.

 

업계의 최대 경쟁업체 엑서더스가 파산을 신청했고, 최대 고객이었던 애트리액스의 파산으로 2,500만 달러의 매출채권 회수가 불가능해지면서 덩달아 추가 자금 조달도 어려워지자 결국  옵스웨어를 분리한 후 라우드클라우드의 매각에 나섰다. EDS와 극적으로 합의, 회장인 마크는 계약 체결을 위해 뉴욕으로 가고, 저자는 남아 이를 직원들에게 보고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제 직원들은 EDS로 옮길지, 옵스웨어에서 남을지, 아니면 타회사로 갈지를 선택해야 했다. 직원들에 대한 이런 진지한 태도가 나중에 회사 재건의 토대가 되었다.

 

 

옵스웨어 HP에 넘기다

 

라우드클라우드를 EDS에 매각한 후 회사는 한층 정돈되었지만 주주들은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주가는 어느새 0.35달러까지 하락했다. 현 상황에 대한 인식이나 미래에 대한 확신을 위해서는 직원들과의 충분한 교류가 필요해 보였다. 일반적으로 회사들은 이때 회사 외부에서 MT를 갖는다.

 

저자는 산타크루스에 있는 값싼 모텔에 40개의 방을 빌렸다. 그리고 잔류한 직원 80명을 데리고 가서 하룻밤 묵으며 즐겁게 먹고 마셨다. 다음 날, 그는 그들에게 옵스웨어가 우리에게 가져다 줄 기회를 설명했다. 그런 뒤 그날 일정이 끝나갈 무렵, 최대한 솔직한 태도로 말을 꺼냈다. 이날 사표를 낸 직원은 2명이었다. 나머지 78명 중에서 다시 2명을 제외한 76명은 우리 회사가 5년 후 휴렛팩커드에 인수될 때까지 죽 함께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기회에 대해 제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이제 여러분 모두 아셨을 겁니다. 월스트리트에서는 옵스웨어를 별 볼 일 없는 아이디어라고 여기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여러분이 월스트리트의 생각에 동의한다 해도 이해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도전을 마주하고 있는 새로운 회사입니다. 따라서 오늘 여러분 모두에게 일정량의 주식을 무상으로 지급하겠습니다. 만일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은 분이 있다면 오늘부로 그만두길 바랍니다. 제가 여러분을 해고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필요하다면 일자리 찾는 것을 얼마든지 도와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우리의 위치를 제대로 인식해야 합니다. 누가 우리와 함께하는지, 누구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조금씩 출혈이 발생하는 상황을 방관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서로에게 정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입장을 밝혀 주십시오"

 

소프트웨어 업체 옵스웨어의 제품 라인이 확정되자 회사의 성장에도 가속도가 붙어 매출 규모가 1억 5천만 불에 달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주가도 0.35달러에서 6~7 달러로 올랐다. 시장에서 회사매각설이 돌며 주가가 9.50달러까지 솟자 회사 인수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이 많아졌다. 결국 휴렛팩커드HP가 주당 14.25달러, 인수대금 16억 5천만 달러로 인수하게 됐다. 이렇게 저자는 회사 설립에서 기업공개, 매각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반복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소중하게 배운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종류의 벤처 캐피탈 설립을 결심했다.

 

 

악전고투, CEO의 숙명이다

 

삶은 악전고투다

- 칼 마르크스

 

스티브 잡스나 마크 주커버그 같은 위대한 기업가 역시 악전고투를 겪었고, 이를 벗어나고자 고군분투했다. 누구든 이겨 내리란 보장은 없다. 어쩌면 이겨 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말그대로 어렵기 때문에 악전고투다. 이를 통해 우리는 위대함을 발현하는 기회로 만들 수도 있다. 다음은 저자만의 악전고투 해법이다.

 

1. 모든 것을 홀로 짊어지지 마라 ~ 그 누구도 당신만큼 아파하지는 않는다. 모든 부담을 나눌 수는 없지만, 가능한 한 많은 부담을 나눠라. 존립에 위협을 가하는 문제일지라도 최대한 많은 사람을 모아 해결책을 강구하라. 옵스웨어를 경영하며 너무 많은 거래처를 잃고 있던 시기에 직원들은 곧 팀을 규합했고, 옵스웨어를 살려 낼 제품을 만들어 냈다.

2. 염병할 체스판에는 언제든 수가 있다 ~ 기술 업계는 늘 극도로 복잡해지려는 경향이 있어서 마치 영화 <스타트렉>에 나오는 3차원 체스판과도 같은 셈이다. 직전 분기수익 200만 달러에 직원 340명, 이듬해 예상 수익 7,500만 달러인 회사를 상장시키는 것은 어떨까? 그는 그런 수를 두었다. 그것도 기술 기업을 공개하기에 최악의 시기로 인식되던 2001년에 말이다. 6주 동안 쓸 현금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그는 그 수를 두었다. 수는 늘 있기 마련이다.

3. 최대한 오래 버텨라. 운이 따라 줄 수도 있다 ~ 기술 업계의 내일은 오늘과 완전히 딴판일 수 있다. 내일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생존하면 오늘 찾지 못한 해법을 내일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4.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마라 ~ 현재 처한 곤란한 입장은 본인 탓에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없다. 모든 CEO가 숱한 실수를 저지른다. 본인에게 스스로 낙제점을 주며 자책하는 것은 어떤 일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5. 어른과 아이의 차이는 역경을 극복하는 데 있음을 잊지 마라 ~ 위대해지고 싶다면 역경을 도전 과제로 받아들여라. 위대해지고 싶지 않다면 애초에 회사를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

 

건강한 기업 문화는 나쁜 소식을 나누도록 직원들을 장려한다. 사내의 문제들을 공개적으로 자유롭게 논의하면 훨씬 빠르게 해법을 찾을 수 있다. 문제를 숨기는 회사는 그 문제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좌절시킨다. 그렇다면 건강한 기업 문화를 만들기 위해 CEO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오로지 하나뿐이다. "해결책을 찾도록 문제를 공개하는 사람들을 처벌하지 않고 포상하는 문화를 형성하라"

 

"기업 문화를 프로그래밍하라"

 

아마존닷컴의 창립 CEO 제프 베조스는 애당초 고객에게서 가치를 얻어 내는 게 아니라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해 수익을 창출하는 회사를 구상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가격과 고객 서비스 양면에서 장기적으로 앞서 가길 원했다. 그러나 많은 비용을 소비하면서 그럴 수는 없었다.

 

수년에 걸쳐 모든 비용을 감사하고 초과 지출한 직원에게 호통을 치며 비용을 절약할 수도 있었겠지만, 제프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절약 정신을 기업 문화로 만든 것이다. 그가 택한 방법은 믿기 힘들 만큼 간단한 것이었다. 회사의 모든 책상을 홈 디포에서 값싼 문짝을 구매한 뒤 거기에 다리를 붙여 제작하기로 한 것이다.


문으로 만든 책상은 시가총액이 1,500억 달러인 아마존과 어울리지 않는다. 신입 사원이 왜 홈 디포의 무작위 부품을 이용해 임시변통으로 만든 것 같은 책상에서 근무해야 하는지 물으면 예외 없이 기를 죽이는 답변을 듣게 된다. "우리는 최고 제품을 최저 가격에 배송하기 위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강구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업 문화다.

 

 

가장 어려운 CEO 기술 

 

CEO로 일하다 보면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CEO들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폭음을 하거나 한눈을 팔고, 심지어 그만두는 경우까지 본다. 아무리 그들이 자기합리화에 성공할지라도 결코 위대한 CEO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위대한 CEO는 고통을 직시한다. 잠 못 이루는 밤, 갑자기 흐르는 식은땀, 그리고 지독한 고통을 상대한다.

 

"그만두지 않았을 뿐입니다"

 

성공한 CEO를 만날 때마다 저자는 그들에게 어떻게 오늘에 이르렀는지 물었다. 보통 수준의 CEO들은 자신의 뛰어난 전략적 조치나 직관적인 사업 감각, 또는 여타의 다양한 자기만족적 설명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위대한 CEO들은 열이면 열 모두 이렇게 말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평시란 회사가 핵심 시장에서 경쟁사들보다 큰 폭으로 우세한 위치에 있으면서 시장이 커지고 있는 시기를 말한다. 이때 회사는 시장을 확대하고 조직의 강점을 키우는 데 주력할 수 있다. 한편 전시에는 임박한 존립 위기를 모면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런 위기를 몰고 오는 원인은 다양하다. 시장의 경쟁, 거시 경제의 극적인 변화, 시장 변화, 공급망 변화 등이다.

 

앤디 그로브는 <승자의 법칙>에서 회사를 평시에서 전시로 돌변시킬 수 있는 힘들에 관해 기막히게 묘사했다. 평시 임무의 예로는 인터넷 속도를 높이려고 한 구글의 노력을 들 수 있다. 검색 엔진 시장에서 구글은 지배적인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인터넷 속도를 높이는 일은 무엇이든 그들에게 득이 된다고 판단했다. 인터넷 속도가 빠를수록 사용자들이 더 많은 검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글은 확실한 시장의 리더로서 검색 엔진 시장의 경쟁자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시장을 확대해 나가는 데 더 주력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전시 임무로는 앤디 그로브가 1980년대 중반에 인텔을 이끈 사례를 들 수 있다. 인텔은 밀어닥친 일본 반도체 회사들의 위협을 감당할 수 없어 메모리 사업에서 손을 떼야 했다. 그 위협은 너무도 막강해서 인텔을 파산 위기에 내몰 수도 있었다. 결국 인텔은 자사 직원의 80퍼센트가 종사하고 있던 핵심 사업을 포기해야 했다.

 

또 CEO에게 용기는 특히 중요하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사례연구에 따르면 CEO는 대개 존재하는 정보의 10퍼센트도 안 되는 양을 갖고도 결정을 내린다고 한다. 그러므로 CEO는 회사를 자신도 올바른 방향인지 알지 못하는 쪽으로 이끄는 도박을 감행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사업을 하면서 저자가 내린 최고의 결정은 라우드클라우드 사업을 EDS에 매각하고 옵스웨어로 전환한 것이다. 만약 이 결정을 직원이나 투자자, 고객이 참여하는 표결에 부쳤다면 혼란의 와중에서 물거품이 돼 버렸을 것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 위로 올라가는 법이기 때문이다.


CEO에게는 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모두 모을 시간적인 여유가 결코 없다. 그렇기 때문에 CEO는 회사의 일상 활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지식을 모아야 한다. 그래야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왔을 때 최대한의 정보를 보유하고 있을 수 있다. 어떤 결정이라도 내릴 준비가 되어 있기 위해서는,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것에 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비즈니스는 이종격투기의 세계다

 

회사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향후 더 발전된 제품으로 진화하는 데 심각한 걸림돌이 될 문제점을 발견했다. 그의 판단으로는 이를 해결하려면 제품 출시 일정이 3개월 늦어지는 차질을 빚게된다. 다른 팀원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3개월이 지연되는 것은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그가 막상 작업을 시작하자 실제로는 9개월이 지연되었다. 하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고치지 않으면 안 되었을 정말로 중요한 문제였다. 창의성과 용기를 발휘한 그를 포상하겠는가, 아니면 일정 차질에 대한 책임을 묻겠는가? 이것이 바로 '책임과 창의성의 패러독스'문제이다.

 

회사가 10배로 성장하는 데 임원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치자. 그런데 그들이 이제 거대 기업이 된 회사의 운영에 필요한 역량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고 뒤처진다면, 그들을 해고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저자의 답은 '당신의 의리는 직원들을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원진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 엔지니어링, 마케팅, 세일즈, 재무, 인사 등을 맡은 직원들 말이다. CEO에게는 그들이 최고 수준의 경영진 밑에서 일하도록 해 줄 의무가 있다. 그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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